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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선생자료

송건호 선생과 시대정신

 조숙제(옥천작가회의 회원,옥천읍 문정리)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치욕의 굴레다. 그것은 한 왕조의 위정자가 백성 알기를, 너무 가볍게 본 결과다. 세도 정치의 폐단(弊端)을 경험하고도 대원군은, 집요한 정권욕에 사로잡힌 가운데, 왕조를 파멸로 몰아간다. 한 왕조가 썩으면 백성의 꼴은 형극을 걸을 수밖에 없다. 피맺힌 절규의 함성이 결국은 씻을 수 없는 원한이 되어, 횃불을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지도층이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면, 이를 일러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이식(耳食)’이라 했다. 귀로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이 이식(耳食) 집단의 원조가 대원군의 가문이다. 일제 강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암울의 시대를 자초하게 된다.
 썩을 대로 썩은 관료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학정(虐政)을 펼친 시대가 바로 고종의 이력이다. 이를 견디지 못한 민초들은 생계를 유지하던 곡괭이와 낫을 들고, 위정자의 목전에 항거하기 시작한다. 민초는 순한 물이요, 풀이다. 물은 만물을 낳고 기르되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물의 ‘유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물은 단순히 순기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편견이다. 물은 바람을 만나면 파고를 일으켜, 격한 역반응을 일으킨다. 배를 뒤집는 기능도 불사한다. ‘풀’의 기능도 이와 유사하다. 풀은 유약하지만, 결코 밟히지만은 않는다. ‘역(易)의 경계’를 넘기 위해 잠시 엎드릴 뿐, 자기 혁신의 동력(動力)을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남의 독촉이나 명령에 의한 응답이 아니라 자발적 동기라고, 어느 시인은 ‘풀’의 해석을 역동적으로 부연한다.

 그렇다. 타인의 명령을 벗어나 생명의 당위성을 요구한 민초들의 함성이 바로 ‘동학혁명(東學革命 1894(고종 31)’이다. 동학은 반란이 아니다. 반란이라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려는 썩은 왕조와, 기생충 같은 양반층의 궁색한 자기변명이다. 무지한 백성을 볼모로 잡은 무능한 왕조에 대한, 자발적 갱생의 절규며, 최소한의 자주권 운동이다. 아니 처절한 삶에 대항한 피맺힌 절규, 그 자체였다. 사마천(司馬遷)은 일찍이 『사기(史記』에서 갈파하지 않았던가.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을 우습게 보는 짓거리요, 고로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라고. 임금이 오죽이나 못났으면, 제나라 백성을 처참하게 도륙(屠戮)시키려고 일본 놈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거기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썩은 유생과 양반 놈들, 그리고 늑대의 탈을 쓴, 일본의 야심이 합작을 이뤄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한 것이 동학의 실상이다. 백성의 고혈을 비틀어서 수탈한 자금으로, 현대식 무기를 도입해 제 백성의 가슴을 향해서 무참한 도륙(屠戮)을 자행한 임금이 고종이다. 힘없는 백성들에게 분풀이를 자행한, 천추에 유례가 드문 폭군이다. 우리는 동학혁명의 아우성이 지금도 하늘에 닿아있는 ‘우금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금치 도륙 현장을 목도한 후세의 한  사가는 이렇게 전한다.
 “우금치 전투는 일본 놈과의 전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을 앞세운 썩은 왕조와 부패한 양반 관료가 합작한 백성을 처참하게 살육한 광대놀이 마당이었다.”고·이것이 조선왕조가 백성을 대하는 자세였다. 이 패륜을 자행해 놓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줄 모르며, 책임을 반정(反正)으로 몰아가는 위정자는 자격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 
 장자(莊子)는 『內篇』의「응제왕 (應帝王)」에서 접여(接輿)의 입을 통해서 위정자들에게 신랄(辛辣)한 촌철살인을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바다를 걸어가고 황하를 파는 일이요. 모기에게 태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고. 장자의 말은 ‘반어’와 ‘우언’의 연속선이다. 장자의 시각으로 보면, 대원군 가문은 모기의 혈족 이었다.
 이 민초들의 원한 맺힌 함성을, 역대 독재정권은 입맛대로 끌어다 ‘역발상’했다. 비통하게 눈을 감지 못하는 원혼들을 두 번 죽이는 만행이다. 그 주인공이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깡패집단이다. 곁에서 장구를 치고 북을 울려댄 보수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요, 동아일보의 행적이다. 

  이 썩은 족벌언론의 위대한 ‘100년의 자화상’이다. 국민을 기만해 놓고도 하늘을 보고 삿대질을 자행한 신문,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각을 벌인 놈들이 바로, 민족지임을 자칭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구태다.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대기업과 썩은 자칭 보수정치권 인사들도 한몫 했다. 이것이 오늘날 보수를 자칭하는 ‘썩은 보수정치’의 현주소다. 그들은 ‘빨갱이 몰이사냥’을 선호한다. 궁지에 몰리면 이용하는 단골 메뉴다. 사상 몰이로 분단을 획책하고 언론을 호도하며 위선과 가식의 놀음판을 즐겨 애용한 대통령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를 ‘국부(國父)’라 칭한다니, 보수 정치 수준이 얼마나 저급한지 알만하다.
 ‘8.15해방’ 이후 정부수립 과정의 시간은, 한민족 운명의 좌표가 좌지우지될 천금과 같은 과정이었다.  이 중차대한 시간을 이승만이라는 ‘희대의 괴물’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궤멸(潰滅) 시켰다. 그의 목전에는 국가와 민족은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반민족행위자와 일본을 이용하는 비열한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독립지사들을 집단 매도하기 위한 갖은 모략과 중상은, 모두가 이들의 썩은 뇌리를 거쳐서 완성된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다. 이승만 정권을 최일선에서 비호한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요 동아일보의 빼놓을 수 없는 치적이다. 정권을 비호한 썩은 족벌 신문과 한민당의 모기새끼 같은 이식(耳食)집단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검찰과 언론의 패륜 행각의 발자취가 현 자칭 보수들의 위대한 족보다. 그러고도 반성의 기미를 보일 줄 모르는 행태가, 가히 현 일본 정부의 수작과 한 탯줄임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송건호 선생은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에 불과했다. 절개 곧은 논객일 뿐, 욕심이 없는 바보 같은  우직한 선비였다. 그런 그를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깡패집단이 우국지사로 만들었다. 음지에서 여리게 자란 인동초를 구둣발로 짓밟아 누르니, 용수철 같이 튀면서 마디 굵은 대쪽으로 생태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교묘한 수단과 비열한 술책으로 선생을 설득하려 했지만, 선생의 지향점은 오직 일념, 민족과 통일만이 선생의 평생‘화두’였다. 선생은 ‘8.15해방’이 어떻게 민족의 정도에서 일탈의 길을 밟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민족이 왜, 분열돼서 서로 혈전을 치러야만 되는가를 통분해 했다. 이로 파생되는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애달파 하시다가, 평생을 오로지 언론 본연의 길과 민족의 앞날을 노심초사했던 시대가 낳은 비운아 이셨다. 고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히, 민족의 비전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 ‘시대정신’을 옹골차게 끌어안고 뒹군, 난세(亂世)가 영웅을 낳은 형상이다. 썩은 족벌 신문의 패륜 앞에서, 온몸으로 대항한 추상같은 논객이셨다. ‘시대정신’은 헌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는 작업이 아니다. 자신의 고혈을 짜내서,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우는 작업이다. 
 일제 하수인 역할을 자청하고, 독재정권에게 모기새끼의 입으로 나팔수 역할을 자임했던 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일이, 송건호 선생의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이다.  이정신은 동학의 뿌리와 연루되며, 우리 시대에게 부과된 소명이며 제2의 독립운동이다. 젊은 세대가 이 사실을 직시하는 날이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어야 할 날이다.
 일본은 또다시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다. ‘청산리전투’에서 보기 좋게 대한독립군에 패한 한풀이로, 중국 만주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 3만 명을 무자비하게 대학살 했다. 이 뼈에 사무친 상흔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단다. 미국도 방조하고 있다. 완벽한 힘의 논리다. 우리가 국제정세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도는, 단 하나다. 하루속히 조국 통일을 성취하는 길이다. 통일된 조국에서는 썩은 족벌 신문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새 천 년의 역사는 새 자루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또한 이 길이 송건호 선생의 ‘시대정신’을 완성하는 작업이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만이 일본과 미국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그날은 멀지 않아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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