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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선생자료

송건호 선생과 시대정신 조숙제(옥천작가회의 회원,옥천읍 문정리)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치욕의 굴레다. 그것은 한 왕조의 위정자가 백성 알기를, 너무 가볍게 본 결과다. 세도 정치의 폐단(弊端)을 경험하고도 대원군은, 집요한 정권욕에 사로잡힌 가운데, 왕조를 파멸로 몰아간다. 한 왕조가 썩으면 백성의 꼴은 형극을 걸을 수밖에 없다. 피맺힌 절규의 함성이 결국은 씻을 수 없는 원한이 되어, 횃불을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지도층이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면, 이를 일러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이식(耳食)’이라 했다. 귀로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이 이식(耳食) 집단의 원조가 대원군의 가문이다. 일제 강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암울의 시대를 자초하게 된다. 썩을 대로 썩은 관료들의 가렴주.. 더보기
이제는 송건호 선생이다 조숙제(옥천작가회의 회원, 동이면 세산리) 춘추전국시대는 일상이 전쟁 상황이었다. 강한 나라는 강한 대로, 약자는 약자대로의 위험이 상재돼 있는 사회구조였다. 진(晋)나라의 영공(靈公)은 7세에 왕의를 계승한 폭군이었다. 그는 간언을 하는 재상 조순((趙盾) 을 죽이려 했다. 그러자 조순은 살고자 국경을 넘으려다 폭군 영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그리던 조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관인 동호(董狐)가 “조순 대감이 영공을 시해했다.”라고 적었다. 조순 대감이 강력 항의하자 사관 동호는 이렇게 강변한다. “조순 대감이 영공을 직접 시해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해 당시 엄연히 나라 안에 계셨고,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지 않았기에 시해자에 포함된다.”고. 이렇듯 조순 대감은 법을 지키기 위해서 누명을 .. 더보기